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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세 '알파걸', 열정으로 물들인 51년 '물감' 인생
  2013-07-08 939
  관리자  info@alphacolor.com

84세 '알파걸', 열정으로 물들인 51년 '물감' 인생

 

 

 

 

 

 

"60~70년대 당시로선 드물게 여자 혼자 영업을 하러 돌아다니다보니 과부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5일 서울 평창동에 있는 알파색채 본사 대표실에서 만난 남궁요숙 대표(84, 사진)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모습으로 이같이 말했다. 벽면에는 지난해 췌장암으로 작고한 남편 고 전영탁 알파색채 회장 사진이 걸려 있었다.

80대의 여사장은 51년간 '미술용품 제조업'이라는 한 분야를 고집하며, 중소기업을 이끌어온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드물던 그 시절 여성의 몸으로 영업현장을 누비며 겪었을 어려움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실 남궁 대표의 삶은 기업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6. 25전쟁 전에 가정보육사범학교(현 세종대학교)에 입학, 전쟁이 끝나고 졸업해 양정여중, 매향여중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결혼 이후 교사 생활을 접고, 1962년 척박했던 국내 물감제조업에 뛰어들었다. 한일국교수립 이전이던 당시 밀수된 일본 물감이 국내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상황을 보고, '값싸고 품질 좋은 국산 물감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 사업에 나섰던 것.

남궁 대표는 알파색채 대표이사로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했고, 남편인 고 전 회장은 연구개발을 맡아 부부가 함께 회사를 일궈나갔다.

"사업에 나선 이후 시장에서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제치하 시절 유학을 다녀온 미대 교수와 학생들이 일제물감을 최고로 여기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남궁 대표는 이때부터 화방 관계자와 교수들을 만나 물감의 우수한 품질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설득과 가격협상은 남궁 대표의 몫이었다. 이후 알파색채는 차츰 인정받아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1969년 출시한 '알파포스터물감700' 주문이 폭주하면서 쉼 없이 본사로 찾아오는 트럭에 물감을 실어다 날라줄 손이 모자랄 정도였다.

1981년에는 국내에서는 최초, 세계에선 6번째로 아크릴물감 제조에도 성공했다. 현재는 전체 매출의 각각 절반 정도를 포스터물감과 아크릴물감에서 내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남궁 대표는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다. 디지털기기 보급 및 학급 인원수 감소 등으로 점점 물감 업체들이 설 자리가 좁아졌던 것이다. 이로 인해 알파색채는 2008년부터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해 5년 간 30% 이상 매출이 줄었다.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팔순을 넘긴 남궁 대표는 오히려 더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남궁 대표는 지난해부터 프랑스의 지류업체 캔손과 협약을 맺고 전문가용 마커를 공급하는 등 내수시장을 탈피해 해외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화재 복원 전문가들에게 공급할 단청 물감을 개발하는 등 '장인용' 물감 출시도 준비 중이다.

남궁 대표는 "전문가용 물감의 내구성 및 발색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미술가들을 사랑했던 남편의 유지를 이어 받아 제품 개발에 더 힘쓰고 있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출처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3070510192380395&outlink=1